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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되어 주십시오

김영중 미카엘라 2009. 9. 20. 15:48

힘이 되어 주십시오

 

오늘 카나다에 거주하는 친구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분은 날아갈 듯이 기쁩니다

 

이유인즉 제가 8월 23일 이후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없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덕분에 나는 친구의 안녕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소식이 없으면

" 이 인간이 무슨일이  있는거야?" 한다고 동생이 되뇌이다가 

언니 앞이라 깜짝 놀라던 모습이 생각나서 때때로는 억지라도

글을 올렸었는데 이번에는 기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릴려면 나름 생각도 정리하고

도감도 찾아보고 사진도 선별해야 되는데 당분간은 그럴 여유가 없을 듯도 합니다

 

저는 24살에 주택은행에 입사하여 28살에 대리가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중견행원 입사시험에 합격하여   여행원이 아닌 행원으로 입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행원에게서도  여행원에게서도 별로 환영 받지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였습니다

 

여행원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 저는 고참 언니들로 부터 임금의 댓가에 맞추어

일할 것을 요구 받았고,  은행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행원 연수에서는 늘 제외되었습니다

연수원에 있는 동기생을 설득하여 억지로 연수에 갔는데 그 직원은 우리 차장님한테 엄청 혼났고,

그 연수중에 발령이 난 나는  교육중이라 일주일 늦게 부임했다고  지점장님에게  여러번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암튼 여러가지의 어려움은 많은 도움을 주어서 한번의 시험으로  대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1살에 지점장 공모에서 발탁이 되어 지점장 발령을 받았습니다 

대리가 되는 순간 부터 저는 뭇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젊은 엄마들은 어린딸의 손을 잡고 찾아와 여자도 무언가 할 수 있음을 보게하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여자 대리도 아주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때부터  저는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 사랑은 받아도 몸은 엄청 고달프기도 했습니다

집에 오면 수저들 힘이 없어  저녁먹기도 어려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은행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지만 업무는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이지요 )

 

1997년 지점장이 되던 해 우리 나라에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많은 직원들이 그만두어야 했고

나는 우리 지점의 직원들을 그만두게 하라고 강요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나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것을 약속 받고 그만두지 않도록 허락했는데

지금도 그 일을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해부터 은행들은 신용카드를 남발하기 시작했습니다

IMF위기를 소비진작으로 해결하려는 것이었지요

신용불량자가 수없이 많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신용카드를 발행하는

담당지점장으로  안타깝기 한이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시민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경제교육을 하여야겠다고.

그래서 금융경제공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먹고 사는 일은 해결해 줄테니 제가 적임자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은행을 그만두었고,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남편과 미국에서 일년을 보내는 동안(은행에 근무하기에 하지 못했던 일) 

경제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충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저를 찾아내었습니다

 

저는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재테크전략과 경제원론을 강의하였습니다

강의하면서 한밭수목원에서 숲해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숲에 들어간 첫날 나는 처음으로 곤충을 보았습니다

 

 

 중국청남색잎벌레가 제 눈에 띈 것입니다

왜그리 예쁘던지.....

그 날로 부터 곤충을 비롯한 자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도 저의 일은 제테크강의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지요

경제쪽 강의를 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첫째는 2050년이 되면 지금의 어린이들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어른들을 부양해야되는데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둘째는 우리선배들과 우리는  선진국이 있어 그들을 따라  열심히 일을 하여 지금에 이르렀는데, 최첨단 기술의 시대에 살게 되는 우리 후배들은 무엇을 보고  배워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을까?

 

저는 그 해답을 자연에서 찾았습니다. 자연을 공부할수록, 숲을 알수록

숲이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쪽 강의를 접었습니다

경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우리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고

자연에서 그들의 감성과 지성이 함께 자라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에 사진은 누구도 마음껏 사용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제는  숲해설가로 전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는 아주 아주 작은 것일 뿐입니다

여럿이 한다면 금방 큰 일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숲 한가운데에는  숲해설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숲해설가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자연에 이끌어야되는지도 아직은 잘 모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지요

 

이제 대전충남지역의 숲해설가협회를 창설하여

숲해설가선생님들과  함께  더 나은 숲해설이 되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저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나다의 잭에게는 며칠 뒤 친구들의 소식을 담아 답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