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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노후

김영중 미카엘라 2007. 4. 16. 23:50

잇츠 대전 4월호에 게제된 원고 전문입니다.

우리 친구 이야기도 들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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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노후

2027년 3월. 갑돌씨는 올해 72살이다. 그는 아내가 두루마기의 옷고름과 옷맵씨를 잘 다듬어 줄 수 있도록 몸을 반드시 세우고 있다. 지난여름 아내가 포도껍질로 염색하여 만든 연한 포도빛의 실크두루마기는 오늘의 연주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라 생각하니 어깨가 으슥해진다. 그는 오늘 친구의 결혼식에 축하연주를 동료와 함께 하기로 되어 있다. 노인들의 결혼식은 이젠 자연스런 것이 된지 오래다.

 

단소연주를 하는 그는 동료와 국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그는 나이 50이 되었을 때, 자신의 생활을 풍요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가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학교를 그만 두었을 때, 자신의 앞에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많은 시간이 너무 무섭게 다가왔다.

 

그는 고민을 시작했고, 결국 생각해 것이 단소였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이 들려주셨던 단소의 소리가 두고두고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있었음을 떠올렸던 것이다. 곧장 문화원에 등록을 하여 단소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절실했던 만큼 배우는데 열정적이었다. 결국 문화원 등록한지 3년 만에 문화원 학생발표회에서 솔로 연주자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의 동료는 문화원시절 만난 사람이다.

 

그가 국악학원을 시작한지도 7년이 되었다. 정년퇴임식이 있던 다음날 동요와 함께 동네 근처에 학원을 오픈하였다. 수강생들은 어린이로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같은 구역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미 기초적인 학습이 끝난 학생들이 그의 학원에 찾는 이유는 전문가수준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나 악기하나는 수준급이어서 자기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갑순씨는 손을 흔들며 나가는 남편의 모습에 행복감을 느낀다. 남편의 두루마기는 지난여름 포도껍질을 모아 일곱 차례나 물들인 자기의 정성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 유난히 바느질을 좋아했던 기억에 퀼트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작품전시회도 여러 번하고 문하생들도 꽤 많이 배출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무언가가 조금은 부족함을 느껴야 되었다.

그녀가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은 20 여년전쯤 친구들과 어느 작은 마을을 방문했을 때이다. 작은 개천의 반짝이는 돌을 보고 있을 때 섬광처럼 지나가는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작은 마을에 살았던 그녀는 여름이면 친구들과 냇가에서 살다시피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물속에서 헤엄치며, 힘들면 갯가에 나와서 따뜻하게 데워진 돌을 귀에 대고 물을 빼내곤 하였다. 그럴 때 그녀는 자갈밭에 앉아서 갖가지 색깔의 돌을 문질러서 색을 만들어보곤 했던 것이다. 햇빛을 받아 만들어 내는 그 색들이 얼마나 곱던지.......

 

그 날부터 그녀는 우리 자연의 색을 재현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녀가 우리 산하에 있는 식물들로 만들어내는 고운 빛깔의 실크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고, 한복으로 만들어 입게 되면 입은 이의 품격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갑순씨는 한밭수목원 사진전시회에 참여한 순희의 사진을 보기위해 친구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 약속시간까지는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으므로 우아하게 꽃잎차를 마시고 있다. 얼마 전 농촌에서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했을 때 친구가 손수 만든 백목련꽃 차를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친구는 젊어서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새천년이 도래했다고 모두들 축제분위기가 전 세계를 들뜨게 하더니, 금세 노령화사회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그 때 꽃을 좋아하던 그 친구는 시골에 땅을 마련하였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자 그 곳에 우리꽃 농장을 만들고 꽃차 만들기 체험의 장을 마련하였다. 우리의 산과들에 있는 식물로써 우리에게 맞는 아주 고급스런 차를 만들어 특산화한 것이다.

 

사진전시회는 엑스포남문주차장 자리에 있는 산책길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 장소는 수목원이 1, 2차 개장이 된 이후에도 포장이 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의 사용논란이 있었으나, 원래의 목적인 수목원으로 사용하면서 한밭수목원은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버금가는 도심의 수목원으로써 대전의 자랑이자 우리나라의 명소가 되어 있다.

 

수목원에 도착하자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미술관에서 도슨트 하는 친구, 계룡산 해설사, 문화재 해설사, 미술이론 지도사, 수목원에서 일하는 새박사, 곤충박사, 야생화, 세밀화담당 뿐만 아니라 민물고기박사 등 인생의 2막에서 나름대로 자기의 삶을 나누고자 애쓰는 친구들이다.

 

많은 분야의 친구가 찾아준 것에 의아해 갑순씨는 순희 친구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순희는 오래전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희는 30년간의 직장인 금융회사를 그만두자 평소 하고 싶었던 카메라를 장만하였다. 그리고 남은 인생으로 삶을 나누기 위해 한밭수목원에서 숲해설 자원봉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순희는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라는 단편집을 접하게 되었다. 그 책은 먼 미래, 혹은 가까운 미래를 가정하여 쓰여 졌는데, 그 중에서도 “황혼의 반란”이란 단편은 노령화사회에 대한 가정이었다. 젊은이들이 더 이상은 노인들을 부양할 수 없다고 노인들을 수용소로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노령화사회의 도래와 황혼의 반란은 순희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교육비와 자신의 삶의 희생을 못 견디겠다며 출산을 거부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대학에 가기위해 초등학교,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예약된 과외 등으로 시달리고, 부모들은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순희는 우리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노인들은 이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에 맞게, 자신의 삶을 나눌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녀는 노후에 대비한 경제교육을 하면서, 젊은 학부모들에게는 산업시대에나 맞는 주입식 과외를 그만두고 21세기에 걸 맞는 창조적인 아이로 키워줄 것을 요구하였다. 창조적인 사람은 과외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고, 문학 ・예술 등 많은 것을 접해보고, 스스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특화시킬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노후를 위해 경제적인 준비는 물론이고 공부하기를 권고하였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평생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찾을 수 있게끔 어른들이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위해 어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자신의 노후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설파하였다. 그 때 그 시절에 만난 친구, 나이 많던 학생들, 수강생들이 오늘 축하객이란다.

 

갑순씨는 그 시절의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대단하다. 바람이 한번 불자 사회적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사이로 오로지 대학 가기위한 과외는 사라졌다. 어른들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사회에 봉사하고 자신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 넣은 것이다.

갑순씨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오늘 모인 모두는 준비된 노후를 보내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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