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3일 제노아의 성녀 가타리나
St. Catharine of Genoa, Third Order Franciscan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축일 9월 15일).
1447년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귀족가문인 야고보 피에쉬와 프란치스카 디 네그로의 5남매중 막내 딸로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들은 부유했지만 그녀는 사치한 생활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어릴 때부터 기도와 명상생활을 즐겼다.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고통을 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어린 카타리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그녀가 종교생활을 갈망하게 하였다. 수도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13세에 수도원에 지원했다 . 그녀의 영적 지혜와 신중함에 놀라워 했지만 사제는 금욕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다고 충고를 하였다. 그녀는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부친이 사망하자 16세의 나이로 줄리아노 아도르노란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방탕하고 불성실하였다.
주님의 개입과 인도
그렇게 10년이 흐르자 더 이상 피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계속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던 1473년 3월 20일, 가타리나는 산타 마리아 델그라찌 수녀원의 언니 수녀를 찾아가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언니의 권유로 산 베네데토 성당에 고해성사를 받으러 갔다. 어떤 은총이 자신을 기다리는지는 전혀 예견하지 못한 채 고해 신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로 그때였다. 고해를 시작하기 직전 갑자기 가타리나는 황홀경에 빠졌다.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고해소의 신부는 고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다려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고해소를 떠났다. 신부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가타리나는 여전히 그 상태에 있었다. 사제의 재촉을 받고서야 황홀경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고해성사를 미루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거의 실신 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그날 가타라나는 자신의 죄와 타락한 삶을 보았으며,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았으며, 그런 주님께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드렸는지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체험이었다.
며칠 후에도 환시를 보았는데, 주님께서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
온몸의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주님께서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가타리나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피가 보이니? 이 피는 너에 대한 사랑과 네 죄에 대한 보속으로 흘리는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은 가타리나를 전율케 했다. 그녀는 사제를 찾아가 총고해를 하고 주님의 몸을 모셨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타리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끊임없이 슬퍼하며 참회와 희생의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졌다. 내면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불에 힘입어 그분과 “하나 된 삶”으로 나아갔으며, 그분과의 깊은 일치의 관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 저의 사랑이여, 이제 더 이상 세상적인 것, 죄스러운 것은 제게 허용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다짐했으며, 그때부터 이것은 그녀 삶의 모토가 되었다.
가타리나가 직접 구술한 <생애Vita>에 따르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만 내적으로 이끌리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주님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했으며, 약 25년 동안 “어떤 피조물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만 가르침과 다스림을 받았다.” 기도, 그리고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관행이었던 매일의 영성체로 힘을 얻으며 살아갔다. 주님께서 그녀의 영혼을 돌볼 사제를 보내주신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세상 안에서 주님을 섬기다
보속과 회개의 삶을, 주님을 향한 오롯한 사랑의 삶을 4년 정도 보낸 후 가타리나는 세상의 터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깊고 참된 행복감으로 이렇게 선언할 수 있었다.
“사랑이 아닌 것은 그 어느 것도 가지지도,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30세가 된 그해부터 가타리나는 ‘자비의 부인회’ 일원이 되어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을 돌보는데 헌신하기 시작했다. 제노바에서 가장 가난하고 더러운 곳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녀의 남편 줄리아노는 낭비와 도박으로 완전히 파산하게 됐으며, 1479년 부부는 궁전 같은 집을 나와 제노바에서 가장 큰 자선시설인 팜마토네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녀의 기도와 희생 덕분에 남편도 서서히 회개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프란치스코 제3회 회원이 되었으며, 환자들을 돌보는 아내를 돕는 충실한 보조자가 되었다.
1490년 가타리나는 팜마토네 병원의 원장이 되었으며, 그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영웅적으로 헌신했다. 페스트, 일명 “흑사병”이 제노바는 물론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유럽의 인구가 1/5로 감소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타리나는 봉사활동 등으로 매우 활동적인 삶을 살면서도 내적으로는 깊고 높은 영적 여정을 걸었다. 그 영혼은 주님의 손에 이끌려 더 깊고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팜마토네 병원에서의 활동시기에 그녀의 영혼은 신비적 절정에 이르렀다. 빈번히 탈혼에 빠졌으며, 주님 사랑의 신비를 초자연적인 은총에 힘입어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때때로 그녀 안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불이 얼마나 강했던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놀랄 정도였으며, 그런 순간에 그녀의 손을 물에 담그면 물이 끓었다고 한다. 심장을 완전히 태울 것 같았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런 그녀의 성덕에 감화되어 제자 또는 협력자가 되었다.
1497년 남편 줄리아노가 세상을 떠난 그 무렵 주님께서 가타리나에게 새 영적 지도자를 보내주셨는데, 가타네오 마라보토Cattaneo Marabotto 신부였다. 가타네오 신부는 가타리나 생의 마지막 시기를 함께하면서 그녀의 영혼사정을 돌보았고, 그녀의 수많은 신비체험을 세상에 전해주었으며, 고통의 도가니에서 마지막 단련을 받는 그녀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1510년 9월 15일 가타리나는, 그녀 생애의 마지막 9년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병의 고통에서 풀려나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세속에서 살면서 천상적 사정을 관상하는 뛰어난 영성 대가였으며,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고 세상을 오염시키는 마귀의 간계를 간파했던 한 인물이 그날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녀는 대녀인 토마시나 베르나자에게 작별을 고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토마시나, 네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 영원에 대한 희망을 늘 간직하기를 … 무슨 일을 할 때나 주님의 뜻을 찾고, 무엇보다도 사랑, 주님의 사랑을 ….”
제노바의 가타리나 성녀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은 채 현재 이탈리아 제노바에 있는 성녀 가타리나 성당의 매우 아름다운 유리관 안에 모셔져 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위대하심을 무언중에 전해주고 있다.
가타리나 성녀가 체험한 연옥의 신비
가타리나 성녀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흐른 1551년 그녀의 생애와 영성을 담은 책이 제노바에서 처녀 출판되었다. 그 책은 가타리나 성녀가 직접 구술한 <생애Vita>, <연옥에 관한 설명과 해설> 그리고 <영혼과 육신의 대화>,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녀의 고해 사제인 가타네오 마라보토 신부가 최종적으로 정리한 그 책이 그 후 신비신학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가 되면서 제노바의 가타리나 성녀도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가타리나 성녀는 여러 해에 걸쳐 불쌍한 영혼들이 겪는 정화 과정을 직접 내적으로 체험했으며, 그것을 글로 옮긴 것이 <연옥에 관한 설명과 해설>이다. 그 당시까지 연옥은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로 이해되었지만 가타리나 성녀에 따르면, 연옥은 외적인 불이 이글거리는 특정 공간이 아니라 내적 불에 의한 정화, 그 자체였다. 연옥은 지하 심장부에 있는 특정 장소가 아니었다.
“그 영혼 안에서 타오르는 주님 사랑의 불에 의해 이 세상에서 정화되지 않은 죄악의 ‘때’가 깨끗이 씻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근본적 원인은 죄악, 원죄와 본죄이다. 하느님께서 영혼을 만드셨을 때, 그 영혼은 하느님을 향한 복된 열망을 지니고 깨끗하고 맑은 영혼이었다. 그러나 원죄로 말미암아 그 열망은 약화되고, 본죄를 저지르면서 더욱 약화된다. 그렇게 약화되면 될수록 하느님께서 그 영혼과 함께하실 수 없기에 영혼은 더욱더 죄로 물든다. … 영혼이 죄에서 비롯되는 열망과 고통에 얽매여 있는 한 하느님께 대한 관상은 불가능하게 된다.”
세상을 떠난 영혼이 진선미 자체이신 하느님과 어떻게 만나는가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그 영혼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마치 거울로 자신을 보듯이 자신의 죄악, 부족, 아주 작은 결점까지 보게 된다. 영혼이 은총 지위에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영혼은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 죄악으로 인한 때와 더러움을 씻어내야 한다.” 이 정화의 시간을 가타리나 성녀는 이런 비유로 설명했다. “햇빛을 가리면 햇빛 속에 있어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없듯이, 죄악의 때가 덮여도 그와 같다. 그 더러운 때는 영혼을 덮고 있는 지붕과 같으며, 불에 의해 차츰 벗겨지면서 영혼은 참된 태양이신 하느님께서 비추는 빛에 반응할 수 있다.”
가타리나 성녀에 따르면, 영혼은 자발적으로 천국이 아닌 연옥이라는 정화의 과정을 택한다. 하느님의 명령이 아니다. “천국에는 하느님 쪽에서 닫아두신 문이 하나도 없다. 영혼이 원한다면 누구든 그리로 들어 갈 수 있다. 거기서 자비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손을 뻗으신 채 우리를 당신 영광 안에 받아들이려 하신다. 그러나 완전 무구하신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는 영혼이 지닌 너무나 작은 결점까지도 견딜 수 없고,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 연옥으로 뛰어든다. 이로써 하느님과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영혼은 큰 자비를 맛본다.”
가타리나 성녀에 따르면, 연옥 영혼은 두 가지 상태를 강렬하게 체험한다. “연옥 영혼은 자신의 죄에 비해 하느님의 자비가 훨씬 더 크다고 여겨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이 없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연옥 영혼은 그런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체험한다. 이 처럼 연옥에서 정화되는 영혼들은 상쇄되지 않는 지극히 큰 만족과 지극히 큰 괴로움을 동시에 받는다.”
가타리나 성녀는 하느님 사랑의 불에 위한 영혼의 정화를 순금을 얻는 과정에 비유했다. “금은 녹이면 녹을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금이 24K로 정련되면 아무리 불의 온도를 높여도 더 이상 불에 의해 손상되지 않는다.” 가타리나 성녀에 따르면, 연옥에서의 정화 고통은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하느님께서 결코 중단 없이 영혼을 당신께로 끌어당기신다. 그 영혼이 완전해질 때까지 완전한 사랑으로 그렇게 하신다. 끝없는 염려와 배려로, 오로지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 그리고 영혼은 하느님의 빛 속에서 그것을 인식한다. 동시에 그 영혼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어떤 장애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의 힘을 그가 따를 수 없는
것도 하느님의 빛 속에서 인식한다. 아직도 하느님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자기 영혼의 그 무엇을 인식한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열망은 계속 지니고 있다. 이런 모든 인식이 바로 저 연옥의 고통 속에서 영혼이 겪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영혼을 끊임없이 당신께로 이끄시고, 창조 때의 그 순수와 깨끗함을 회복할 때까지 정화를 늦추지 않으신다.”
마침내 이 정화의 단련이 끝난 영혼은 하느님과 하나 되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마리아지 2013년 3 ‧ 4월호 통권 178호에서)
고해소 앞에서 그는 자기자신, 곧 자기가 살아온 공허한 삶과 하느님의 선하심을 알게 됨으로써 그의 마음은 움직였습니다. 이 체험으로 말마암아 그는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세상도, 죄도 없었습니다”(<놀라운 삶>3)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그순간 기도에 대한 내적 가르침을 받았고 죄인인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말로 표현 할 길 없는 영적 체험이었습니다(<놀라운 삶4)성인의 성화상에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십자가를 짊어지신 고통받는 예수님을 보게 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며칠 후 그는 사제에게 돌아가 마침내 훌륭한 고해를 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서 “정화의 삶”이 시작되어, 그 후로 여러 해 동안 자신이 지은 죄를 끊임없이 슬퍼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하여 갖가지 참회와 희생을 스스로 짊어지게 됩니다.
이 여정에서 카타리나는 주님께 훨씬 더 가까워져서 이른바 “하나 된 삶”, 곧 하느님과 깊은 일치의 관계에 이르렀습니다.
<생애>를 보면 그의 영혼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는 하느님의 감미로운 사랑에만 내적으로 이끌리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카타리나는 주님의 손에 자신을 전적으로 위탁했기 때문에 약 25년 동안 “어떤 피조물의 도움 없이 하느님께만 가르침과 다스림을 받았다”(놀라운 삶 117~118)고 적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꾸준한 기도와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관행이었던 날마다의 영성체로 힘을 얻으며 살아갔습니다.
카타리나는 하느님과의 신비적 친교 체험을 깊은 겸손 때문에 남에게 털어놓거나 드러내기를 언제나 꺼렸습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다른 이들의 영적 여정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일 때만 자신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체험인 회심순간을 비롯하여 자기 안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였습니다.
카타리나의 삶 전반에는 두가지 요소가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신비적 체험, 곧 배우자로서의 일치감을 느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였고, 하나는 병원에서 병자들을 돕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이웃들, 특히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도운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 두 기둥입니다.
사랑하는 벗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꾸준히 기도 할수록 우리를 둘러싼 이들, 우리 가까이 있는 이들을 더욱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아무런 구별 없이 끝을 모르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모든 사람 안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신비가는 다른 이들에게서 거리를 두거나 관념적인 삶을 일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다른 이에게 다가갑니다.
카타리나가 널리 알려지게 한 연옥에 관한 사상은 <소고>와 <영혼과 육신이 대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카타리나는 자신의 신비 체험에서 연옥이나 거기서 정화되는 영혼들에 관한 어떠한 특별한 환시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카타리나의 작품의 중심요소는 연옥이며, 연옥에 대한 묘사는 매우 독창적이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그 당시에 영혼 정화의 “장소”인 연옥은 지하심장부 즉, 특정한 장소라 여겨졌는데 카타리나는 연옥은 외적인 불이 아니라 내적인 불이라 하였습니다. 성녀는 하느님과 온전한 친교를 누리는 길에 있는 영혼 정화의 여정에 관하여 말하는데,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비해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비롯하는 깊은 슬픔에서 출발합니다(<놀라운 삶>171).
카타리나가 갑자기 하느님의 선하심을 알게 되면서, 이 선하심에서 떨어져 있는 삶의 무한한 거리감을 깨달으면서, 자기 안에 있는 타오르는 불을 느끼게 된 회심의 순간 그 불이 정화의 불이고 연옥의 내적 불입니다.
카타리나의 연옥은 사후세계에서 시작되지 않고, 오히려 영원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 자기 삶의 내적 체험과 함께 시작합니다.
“영혼은 아직도 죄에서 비롯하는 열망과 고통에 얽매여 있는 자신을 하느님께 드러내고 있고, 이것이 하느님의 복된 관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성녀는 말합니다. 하느님은 너무도 순수하고 거룩하셔서 죄에 얼룩진 영혼은 하느님의 위엄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삶> 171).
영혼은 하느님의 커다란 사랑과 완전한 정의를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올바르고 완전한 방식으로 이 사랑에 응답하지 못했음을 고통스러워하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자체가 불꽃이 되고, 사랑 자체가 죄의 찌꺼기를 정화합니다.
카타리아 안에는 인간의 모습과 하느님을 연결하는 금줄이 발견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정화하셨을 때, 그 분은 당신 사랑의 가느다란 금줄로 인간을 꿰어 당신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인간을 당신께 잡아당기시고, 인간은 “초탈하고 극기한 무아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느님 사랑에 사로잡혀 그 사랑이 자기 존재의 유일한 길잡이, 유일한 동력이 됩니다. (<놀라운 삶>246)
카타리나는 하느님을 향하여 드높여지고 자기 의지를 포기한, 금줄로 비유된 이 상황을 연옥 영혼 위에 비치는 거룩한 빛의 활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 빛은 영혼을 정화하고 하느님의 빛나는 광채의 아름다움으로 영혼을 들어 올립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과 기도 안에서 친교에 들어가면 갈수록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더 많이 알려주시고 우리 마음을 당신 사랑으로 불사르신다는 사실을 카타리나 성인은 자신의 삶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베네딕도 16세 일반알현 2011.1.12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