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 성인

8월2일 포르치운쿨라의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김영중 미카엘라 2016. 10. 26. 21:16

82일 포르치운쿨라의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OUR LADY OF THE ANGELS OF THE PORTIUNCULA -- Feast


포르치운쿨라 Porziuncula(작은 몫) 
작은 형제회의 머리이고 어머니이시며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성당

(전대사축일:8월2일) 

"성인은 이 곳을 어디보다도 사랑하였다. 
그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곳을 특별한 경의(敬意)를 가지고 받들도록 명하였다. 
그는 그 소유권을 다른 이에게 주고, 
자기는 자기와 자기 형제들을 위하여 그 사용권만을 가짐으로써 
이곳이 형제회의 겸손과 극도의 가난의 표본으로 언제나 보존되기를 원하였다.”(2첼라노)


세라핌적 사부 성 프란치스코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 특별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고

’천사들의 성 마리아’, 혹은 ’포르치운쿨라’라고 불리우는 소성당을 큰 사랑으로 돌보았다.

그곳에서 작은형제회와 성글라라 수도회가 축복된 기원을 두었고 성인이 삶을 마감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 프란치스코는 교황 호노리오 3세에게서 이 성당에 포르치운쿨라 전대사를 얻었다고 하며

여러 교황들께서 다른 많은 교회에 이 전대사를 확대하였다.

세라핌 수도가족은 이러한 여러 이유에서 이 성전 축성일을 경축하며 천사들의 성 마리아를 기린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포르치운쿨라의 전대사


성 프란치스코는 교황 호노리오3세에게서 이 성당에 포르치운쿨라 전대사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교황들께서 다른 많은 교회에 이 전대사를 확대하였다.

형제인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1226년 10월3일 성 프란치스코가 형제인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말년의 성인은 심한 고행과 오상으로 인해 쇠약해져 거의 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죽음울 임박했음을 깨달은 성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씨시 읍을 축복했고 마지막 시각엔 알몸으로 맨땅에 눕혀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형제인 죽음이여, 너를 환영한다"고 말하고서

안젤로 형제와 레오 형제더러 형제인 죽음을 노래불러 달라고 명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마지막으로 다윗의 시편을 노래하고 자신에게 재를 뿌리라고 하고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에서 형제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www.ofmconv.or.kr)


포르치운쿨라 소성당 위에 건축된 대성당


포르치운쿨라라 불리우는 천사의 성 마리아 소성당은

아씨시 읍에서 약4km가 떨어진 곳에 있는 천주의 동정 모친께 헌납된 낡은 소성당이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상의 어느 곳보다 이 곳을 사랑하셨다.


성인께서 형제회를 설립하시고 발전시키신 곳이 바로 이성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 많은 초기 형제들이 복음 선교를 떠나기 전에 이 성당에서 영신적인 준비를 하였으며 돌아와서는 이 조그만 성당을 보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을 정도로 이 곳은 작은 형제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곳이었다.


성 비오 5세는 프란치스코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작은 성당을 보존하기 위하여 큰 성당을 덧씌워서 짓도록 명령하였고, 성 비오 10세는 이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을


모든 프란치스칸 성당의 모 성당으로 선포하고, 대성당과 교황 기도소의 명예를 부여하였다.


그래서 세라핌 가족들은 이 성전의 축성일을 경축하며 천사들의 성 마리아를 기린다.


"내 아들들이여, 이곳을 절대로 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한 쪽 문으로 밀려 나거든 다른 쪽 문으로 다시 들어오십시오. 
왜냐하면 여기는 정말로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어머니께서 기거하시는 곳입니다."
(완덕의 거울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