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복자 콘타르도 페리니
Bl. Contardo Ferrini, III Order (For the III Order)
복자 콘타르도는 1859년 4월4일 밀라노에서 태어났고 어린나이에 3회에 입회하였다.
법학 공부를 끝내고 교수로 있었다.
그는 학문 연구와 신앙 생활을 잘 조화할 줄 알았다.
1902년 10월17일 수나에서 선종했다.
콘타르도 페리니(1859-1902)는 밀라노의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정부 장학생으로 베를린에서 로마 비잔틴 법을 연구하였다.
이태리에 돌아와서 여러 고등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가르쳤다. 1886년 3회에 들어갔고, 여생을 회칙을 시행하면서 살았다.
또한 빈첸시오 바오로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는 연설과 저서에서 신앙과 학문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은 오류로부터 보호해 주는 방패이며 진리의 정상으로 이끈다고 주장하였다.
사후 시복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여 1931년 비오 11세가 가경인물로 올렸고
1947년 비오 12세가 시복하였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 교사의 아들로 밀라노에서 태어나 빠비아의 보로메오 대학에서 공부하고,
1880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베를린 대학에서도 2년 동안 공부하였다. 1883년에 귀향한
그는 유스띠니안 법령을 발간하였다. 또한 그는 몇 개 외국어에 능숙하였고, 빠비아에서는 로마 형사법,
그리고 메씨나에서는 로마법 교수를 지냈다. 1894 년, 그는 빠비아 대학으로 돌아왔는데, 로마법의
최고 권위자로 높은 존경을 받았다. 또한 그는 사회활동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성 빈첸시오 데 바울로의 회원이고, 프란치스꼬 재속 회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대학생들을 위한
성 세베리노 보에씨우스회를 만들었고, 1895년에는 밀라노 시의회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북 이탈리아의 수나에서 장티부스로 사망하였다. 그는 200편 이상의 전공 논문을 발표했고,
학문과 일상생활의 조화는 물론 거룩한 생활로까지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꼰따르도는 대학교의 수호성인이다.
복자 콘타르도 페리니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 영성체! 인간의 영혼이 다다라야 할 표현할 수 없는 높음이여!
이 순결하고 천상적인 기쁨, 이 영원한 영광을 맛봄에 비할 만한 그 무엇을 이 세상이 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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