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 복자 주니페로 세라
Bl. Junipero Serra, OFM, I Order
탄생: 1713.11.24
시복: 1988.9.25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1987년 9월 17일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캘리포니아의 Carmel Mission을 들렀다.
이 때 교황은 Junipero Serra의 무덤에 헌화하였다.
1988년 9월 25일 교황은 이 프란치스칸 복음 선포자를 복자품에 올렸다.
Junipero Serra는 1713년 11월 24일 Majorca의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Miguel Jose Serra였고, 그 가정은 겸손한 농부의 가정이었다.
Miguel이 15세가 되던 해에 그는 Nuestra Senora de los Angeles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칸 수련착복을 하였다.
1713년 Miguel은 서원을 하였고 그 때 Junipero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731년부터 1734년까지 Junipero는 San Francisco Palma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가 된 후 초기 몇 년간 그는 학생 프란치스칸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742년 Junipero 형제는 Jajorca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전통있는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1749년 그가 25세 되던 해에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복음화하라는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1749년 4월 13일 Francisco Palou와 함께 Junipero는 Marjoca를 떠나 멕시코를 향하였다.
10월 18일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San Juan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부터 그는 멕시코까지 여정을 계속하였다. 그때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태풍을 만났다.
다행히도 그는 Vera Cruz에 도착하여 거기서부터 멕시코시를 향해 갔다.
그는 멕시코시에 1750년 1월 1일 도착하여 마침 맞게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지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선교사로의 그의 첫 번째 체험을 했던 곳은 Pame 인디안들과 함께 한 Sierra Gorda에서였다(1750-1758).
그는 Jalpan에 파견되었고, 이 때 집중적으로 선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나서
San Saba de la Santa Cruz (오늘날은 Texas의 Menard County임)에서의 새로운 선교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멕시코시의 선교학교로 돌아갔다.
이 여정은 어렵기도 했지만 위험스럽기도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럭저럭 하는 동안 Junipero는 수련장직을 맡았기에 멕시코시에 머물러야 했다.
1767년 Junipero는 캘리포니아의 Loreto로 파견되었다.
캘리포니아에 대한 스페인의 식민지배 야욕 때문에 Junipero는 북쪽 San Diego로의 여정을 떠나 1769년에 도착하였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Junipero는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에 첫 번째 선교 거점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선교의 여정은 북쪽 Monterey쪽까지 계속되었다.
1771년 8월 24일 Junipero는 San Carlos Borromeo에 두 번째 선교 거점(이것을 Carmel mission이라 함)을 세웠다. 이 선교 본부는 캘리포니아에서 Junipero가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본부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 후에 San Antonio (1771), San Gabriel (1771) and San Luis Obispo (1772)에 다른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1773년 Junipero는 멕시코로 돌아가 총독에게 새로운 선교를 위해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멕시코로 가는 길에 그는 몸이 많이 아팠다.
그가 멕시코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 선교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총독에게 제출했을 뿐 아니라,
"representacion"이라는 캘리포니아에 관한 최초의 법적인 문서의 초고를 썼다.
1774년 그는 Carmel Mission에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선교사로서 그곳에 번창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일하였다. 이 때 다시 새로운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San Francisco (1776), San Juan Capistrano (1776), Santa Clara (1777), San Buenaventura (1782).
Junipero의 건강이 1784년에 많이 악화되었다.
그 해 여름 그는 결핵과 오래 누적된 과로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784년 8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그는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여행하였기에 온 피로로 탈진 되었던 것이다.
그는 35년간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Carmel Mission의 성당 묘지에 묻혔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우리에게도 익숙한 샌디에이고, 샌프란치스코 등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늘어선 도시들의 이름은 성인들의 출석부 같다.
성 디에고, 성녀 클라라, 성 바르바라, 성 프란치스코...
이처럼 캘리포니아 해안의 도시들에 성인의 이름이 붙은 것은
신대륙에 처음 도착한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이 선교 수도원을 세우면서 성인들의 이름을 붙였고
그 수도원을 중심으로 마을과 도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수사들은 하루 종일 걷다가 해가 져서 쉬어야 하는 곳에 성당 터를 잡았는데
그렇게 해서 세워진 성당이 무려 21곳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9개 성당은 주니페로 세라가 세웠다.
주니페로는 걷기를 매우 좋아했다.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주니페로 다른 수사들과 함께 뉴멕시코까지 300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그는 여행 중에 독충에 물렸는데 그 후유증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캘리포니아 선교회 소속 지부들을 설립하기 위해 수천 마일을 여행하였다.
건강에는 걷는 것이 가장 좋다는 학설이 있다. 산책은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산책은 근심 걱정고 영혼의 권태까지 몰아낸다.
마음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면 지금부터 걷기 시작해 보자.
걷다가 이웃집 정원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을 감상하기도 하고,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기도 하자.
아마도 금세 마음이 밝아질 것이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www.ofmconv.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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