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3일 아시시의 복자 에지디오(질스) 수도자
Beato Egidio d’Assisi, Bl. Giles of Assisi, religious, I Order
아씨시는 에지디오의 고향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세 동료들의 전기 32).
그가 태어났음직한 연대는 대략 1190년이라고 되어 있다. 그는 본래 하층민 출신이었고, 농민 가정 출신이었다.
첼라노 1생애 25항은 에지디오 형제가
“단순하고 올곧은 사람이었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24명의 총봉사자들에 대한 연대기는 에지디오가 손노동을 하였었고,
땀흘려 땅을 일궈 매일 매일 양식을 구할 만한 기술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전하고 있다.
에지디오는 1208년 4월 23일 프란치스코가 이끄는 새로운 형제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세 번째 동료였다. 프란치스칸 사료들은 그가 수도회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1첼라노 25항; 세 동료들의 전기 32항; 페루지아 전기 55항; 완덕의 거울 36항).
1208년 봄, 프란치스코는 Ancona의 Marches에서의 첫 번째 설교 여정에 에지디오를 데리고 갔다(세 동료들의 전기 33-34항).
그후, 에지디오는 스페인의 Santiago de Compostela로 순례를 떠났다
Legend of St Francis: 7. Confirm!ation of the Rule-GIOTTO di Bondone
1297-99. Fresco, 270 x 230 cm. Upp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에지디오는 1209/1210년에 프란치스코가 인노첸시오 3세를 만나러 갈 때 동행했던 동료들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인노첸시오 3세는 이 때 작은 형제들의 생활양식 “Propositum vitae”를 구두로 인준해 준 사람이다. 그들은 로마에서 돌아오면서 Orte를 거쳐서 왔고, 포르치운쿨라에 정착할 때까지 리보토르토에서 몇 달간 머물렀다(1첼라노 32-42).
24명의 총봉사자들에 관한 연대기는 에지디오를 순회 설교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Mantova와 Ferrara 사이에 있는 Ficarolum이라는 곳에 갔으며, 성지와, Ancona, Gargano 산, 대천사 성 미카엘 성지, 성 니콜라오의 성지인 Bari에도 갔다. 1219년의 총회는 에지디오를 북아프리카의 Tunis로 파견하였다. 그는 선교를 너무나 열심히 하였기에 그곳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인들과 상업 거래에 피해를 줄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이태리로 돌려보냈다.
1225년에 에지디오는 리에티로 가서 Clairvaux의 니콜라오 추기경 관저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그는 매일의 양식을 구걸하면서 살 허락을 받았다.
1226년 가을, 에지디오는 아씨시로 돌아와서 임종을 앞두고 있던 프란치스코와 함께 살게 되었다.
프란치스코가 죽자 에지디오는 페루지아 근처에 있는 Monteripido 은둔소에서 그의 여생을 보냈다. 그는 1262년 4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교황 비오 6세가 그를 시복하였다.
I Compagni di San Francesco.
첫동료들
프란치스꼬는 이제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실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물질적인 성당 수리가 아닌 영적 차원의 교회의 쇄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활기차게 설교를 시작했다.
바로 이 무렵에 프란치스꼬와 같은 생활을 하고자 하는 첫 동료들이 그에게 합세했으니, 이들은 뀐따발레의 베르나르도, 까따니아의 베드로, 아씨시의 에지디오 등이다.
곧이어 그와 동료들은 12명이나 되어 리보또르또(Rivotorto)에서 거친 움막 생활을 하였다. 성 프란치스꼬는 그의 동료 두 명과 함께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하느님의 뜻인지 알기 위해서 성 니꼴라오 성당의 미사에 갔다.
영성체 후 그들은 성서를 3번 펼쳤는데 그 내용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주신 말씀이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마태 19,21),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루가 9,3),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이러한 말씀을 듣고 그는 우리가 해야 될 일과 미래의 우리 형제들이 해야 될 일을 보십시오. 나의 형제여!하고 외쳤다.
프란치스칸 사료들은 에지디오를 열정적이고 심오한 기도를 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위대한 신비주의자로 여겨지고 있다. 완덕의 거울 85항에 의하면 프란치스코는 작은 형제들의 자질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들은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과
에지디오 형제가 가졌던 것과 같은 최상의 덕을 겸비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1첼라노 25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에지디오 형제가 그를 따랐다.
그는 단순하였고, 곧은 사람이었으며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
그는 아주 오래 살았는데, 거룩하고 의롭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으며,
우리에게 완전한 순명과 육신노동과 고적한 생활과 그리고 거룩한 관상의 모범을 남겨 놓았다.”
성 보나벤투라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와 결합한 사람들 중 세 번째 사람은 에지디오 형제였는데, 그는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모든 점에 있어서 그가 남긴 훌륭한 이름에 합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평범했고 배우지 못했으나 프란치스코가 예언한 대로 영웅적인 덕을 실천함으로써 유명하게 되었고, 천상저 관상의 경지로 들어 높임을 받았다.
그는 계속해서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들어 올렸으며 내 눈으로 직접 보았듯이 그는 너무도 자주 탈혼에 빠져 마치 그는 지상에서 살고 있을 때 천사들과 맞먹는 생활을 하느 것 같았다”
(대전기 3장, 4항).
에지디오는 “dicta beati Aegidii” (복된 에지디오의 금언록)에서 자신의 영적인 체험에 대해 기록하였다.
(R.Brown,"Franciscan mystic.The life of blessed brother Giles of Assisi companion of St.Francis".Hanover House,New York,1962).
*작은형제회홈에서(www.ofm.or.kr)
'프란치스칸 성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30일 성 요셉 코톨렌고 사제, OFS (0) | 2016.04.03 |
---|---|
4월28일 복자 루케치오와 보나돈나 부부, 0FS (0) | 2016.04.02 |
4월22일 복자 프란치스코 파브리아노, 1회 (0) | 2016.03.28 |
4월16일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3회 (0) | 2016.03.26 |
4월7일 복녀 마리아 아쏜따(아순타) 빨로따 귀천일 (0) | 2016.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