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 성 요셉 코톨렌고 사제
St. Joseph Cottolengo, San Giuseppe Benedetto Cottolengo Sacerdote ,Third Order Franciscan St. Joseph Cottolengo
St. JOSEPH BENEDICT COTTOLENGO
San Giuseppe Benedetto Cottolengo Sacerdote
Born : 3 May 1786 at Bra, Piedmont region, Italy
Died : 30 April 1842 of typhus at Chieri, Italy
Beatified : 1917
Canonized : 1934 by Pope Pius XI
Name Meaning : whom the Lord adds (Joseph)
Giuseppe = aggiunto (in famiglia), dall'ebraico
이탈리아 토리노(Torino)의 브라(Bra)에서 출생한 성 요셉 베네딕투스 코톨렌고(Josephus Benedictus Cottolengo)는 사제로 서품된 후 본당 사목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토리노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시설이 없었다. 그는 본당내의 어느 부인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아 가난한 병자들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을 개원하게 되었다. 이것이 점점 확대되자 그는 자원 봉사자들을 모집하여 단체를 구성하였는데, 이것이 성 빈첸시오 수도회와 빈첸시오 수녀회의 모태가 되었다.
1831년 콜레라가 창궐하게 되었을 때 병원도 문을 닫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즉시 도시 외곽인 발도코로 자리를 옮겨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하였다. 병원은 연일 만원이었고, 그래서 조금씩 확장되었다. 이제 그는 노인, 농아, 맹인, 불구자, 정신 이상자 및 거리의 여성에게도 보호의 손길을 뻗쳤다. 그래서 그의 피콜라 카사(Piccola Casa)는 큰 병원 조직이 되었다.
그는 이런 불행한 사람들을 사목하기 위하여 연민회, 착한 목자회, 로사리오의 은수자회 그리고 삼위일체의 사제회를 설립하였다. 장티푸스로 인하여 극도로 쇠약해진 그는 오랫동안 치료하였지만 이탈리아의 키에리(Chieri)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그는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톨릭홈에서)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 증거자, St. Joseph Benedictus Cottolengo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 사람들-그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님의 뒤를 따른 모든 성인도 특별히 가난한 이를 사랑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도 이들을 구제하려고 노력했다. 이탈리아의 성 빈첸시오와 또 19세기 박애(博愛)의 사도라고 불리는 1934년 3월 29일 시성된 요셉 베네딕토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1786년 5월 3일 북 이탈리아 토리노의 프라에 있는 코톨렌고 가문에서 태어났다. "될 듯한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격언대로 어려서부터 이미 마음이 착해 어려운 아이를 보기만 하면 즉시 자기에게 있는 빵이나 용돈까지도 다 주어 버리고 아무것도 없으면 어머니한테 달려가서 동냥거리를 타내는 것이었다. 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어린 요셉이 자꾸만 연장으로 방의 넓이를 재고 있어 하도 이상해서 어머니가 그 이유를 물으니까 요셉은 "다 큰 다음에는 이런 방에다 병자들을 많이 수용하고 싶어서요..."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9세때에 첫영성체를 하고 나서 그는 성직자가 되려고 결심하고 아스티시의 신학교에 들어가서 25세에 사제과 되고 더욱 연구를 계속해 토리노 시에서 신학 박사의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잠시 무보수로 성당 사목을 돕고 있었으나 마침 그때에 무서운 전염병이 유행해 이에 신음하는 자가 많아졌으므로 요셉 베네딕토는 어려운 이들을 도와 활동할 때라 생각하고 실량, 약품, 의복, 붕대 등을 가지고 병원이나 마을 내의 가정을 찾아다니면서 신음하는 환자를 간호도 해 주고 임종에 처한 이에게 성사도 주며 활발히 활동을 시작했다. 부모는 아들이 악한 병에 감염되지나 않을까 해서 이를 금지시키려고 했으나, 요셉은 "전쟁에 나서지 않으면 병정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하며 끝내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병사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형제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성스러운 태도를 그에게 엿볼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명성은 토리노 시까지도 널리 전파되어 성체의 성당 소속의 사제로 선임되어 거기에서 강론도 하고, 고해 성사도 주고 성체도 영해 주었는데, 그 진실하고도 열심한 태도는 신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초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치 않고 늘 "주님의 뜻에 적합한 다른 선업은 없는가"하고 생각하던 때, 우연히 장상한테 받은 성 빈첸시오의 전기를 읽고 나서 자신의 갈 길을 발견한 듯이 기뻐하며 "그렇다. 성빈첸시오가 파리에서 빈민, 병자들을 위해 한 것이야말로 내가 토리노에서 해야 될 일이다"하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어느 날이었다. 그는 가난한 부인에게 초대되어 성사를 주러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병자는 여행 도중 병에 걸려 토리노 시의 자선병원에 무료입원을 원했으나 허용되지 않고, 또 남편과 두 아이는 형편없이 누추한 초막에서 그날 그날을 간신히 보내는 것이었다. 이 불쌍한 모양에 매우 애를 태운 요셉 베네딕토는 돌아오자마자 즉시 성모 마리아의 제대앞에 엎드려 열심히 기도하고 이런 사람들을 수용하는 장소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불다로싸라는 구영게 두 방을 빌려, 그때부터 박애 자선 사업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곳에 병자를 수용하고 정성껏 간호해 왔으나 3년후에는 마을 내 사람들의 반대로 말미암아 부득이 그곳을 폐쇄하고 교외(郊外)의 왈도카라는 곳으로 이전하면서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이라고 칭하고 역시 무료로 빈민 병자의 구제에 헌신했다. 이곳은 오늘에 와서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작은 마을을 형성할 정도록 발전해 수용 인원이 때로는 7천명이란 수에 달한 때도 있었다.
요셉 베테딕토는 왈도카에서 빈자의 아버지, 또한 착한 목자로서 활동하기를 10여 년, 그 후는 이탈리아의방방곡곡에 같은 사업을 일으키고 이에 종사하는 동지를 위해 빈센디니라는 남자 수도원과 빈센디네 혹은 흔히 코톨렌기니라는 여자 수도원을 14개소나 창립했다. 이러한 수도원은 모두 자본금없이 세워진 것이었으므로 종종 파산의 위기에 직면한 적도 있었으나, 요셉의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의 정은 기이하게도 보답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어디선가 독지가가 나타나서 부채를 갚아 주는 것이었다. 또한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쌓지도 않는 하늘의 새들까지도 먹여 살려주시는 인자하신 아버지께서는 박애의 사도인 요셉이나 그의 형제 자매들을 결코 굶도록 하시지 않으셨다.
요셉 베네딕토는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잠시도 잊지않고 자신이 간호하게 될 환자를 주님(主)이라고 부르며 사실 주님께 대한 것처럼 정성껏 간호해 주었다. 그가 가장 존경하던 성인은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는 성 요셉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였는데, 성 프란치스코가 세운 제3회에는 이미 청년시대에 입회하고 그의 청빈과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 등의 정신을 체득한 바가 있었다.
1842년 봄, 토리노 시에는 페스트(黑死病)가 만연해 환자들의 수용 간호에 종사하고 있던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의 사제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속출하는 상태에 있게 되어 요셉 베네딕토도 병에 감염, 중태에 빠졌으나 작은 집의 사람들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원해 키에리에 있는 형제의 집에 옮기게 하고 그곳에서 9일 동안 앓다가, 마침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해 4월 30일 천국을 향해 길을 떠났다. 임종시 그가 기도한 말씀은 다윗 성왕의 "야훼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도 기뻤다"(시편 122, 1)라는 시편의 한 구절이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키에리의 마을 사람들이 거의 전부 다 참가해 성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유덕을 높이 찬양했다고 한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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