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8일 복자 루케치오와 보나돈나 부부
Bl. Luchesius, Beato Lucchese e Beata Buonadonna Sposi,
first Franciscan terziaries, III Order (For the III Order)
- 아시시 프란치스코성당 2층, 프레스코화 -
4월 28일 복자 루케치오 (첫 3회원)
루치오 또는 루케치오 모레스터니는 최초의 3회원이었던 매우 영적으로 뛰어났던 인물이다. 그는 1181년에 투스카니에 있는 발 델사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었을 때 종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대신 세상사에 몰두해 있었다. 그는 돈을 좋아하였다.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국민을 갈라놓는 분쟁 속에서 그는 너무나 격렬한 열성당원이어서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포지본지에 정착을 했고, 거기서 상인과 돈놀이꾼이 되어 살았다.
자식들의 죽음으로 그는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는 병자들과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는 일과 같은 자선사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고리대금업을 하였던 것을 보상하기 위해 그는 자신과 아내가 겨우 먹고 살만큼의 조그만 땅 외에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성 프란치스코가 포지본지에서 설교를 하였다. 성인의 열렬한 가르침은 루케치오와 그의 아내 보나돈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어 그들은 성인에게 다가가 자신들을 안전하게 천국으로 이끌어 줄 생활양식을 청하였다.
세상에 살면서 수도생활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단체를 만들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성인은 기꺼이 그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들을 위하여 마련해 준 짧은 생활양식은 후에 늘어나서 3회 회칙이 되었다. 그들은 생활 처지에 맞는 수도복을 받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3회의 최초 회원들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삶은 거룩하였고, 사랑과 자선사업에 온전히 헌신하였다. 이렇게 루케치오와 보나돈나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보속하며 열심히 일하였다. 그들은 탈혼의 은총과 병자를 치유하는 은총의 보답을 받았다. 두 사람은 같은 날 하느님께 돌아가는 은총을 받았다. 루케치오는 1779년 비오 6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기도
오 하느님, 당신의 풍요로운 자비로 복된 루케치오를 회개의 생활로 초대하시어 신심과 자비의 공로로 빛나게 하셨으니, 그의 중재와 공로로 저희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신심과 자비의 행위로 당신의 자비를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상
우리는 육적으로 지혜롭고 밝아서는 아니 되며, 오히려 더욱 단순하고 겸허하며 순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죄로 인하여 비참하게 되고 부패되었으며 악취를 풍기고 또한 벌레들이기에 우리의 육신을 수치와 멸시를 받을 만한 것으로 여깁시다. 주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우리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종들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 때문에 피조물인 모든 사람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2-
(재속프란치스코한국국가형제회홈에서)
루케시오 혹은 루치오라고도 불리는 그는 발 델사 태생인데 이곳은 후일 플로렌스로 불린다. 그는 첫번째 재속 프란치스꼬 회원이다. 젊어서 그는 매사에 세속적인 탐욕을 부렸는데, 특히 재산과 정치에 욕심이 많았다. 이때문에 그는 구엘프란 사람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고향 마을 가찌아노를 떠나 뽀기본지로 이사하였는데,
이곳에서 그의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35세쯤 되었을 때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의 자식의 죽음 때문인듯 여겨진다. 이 때에야 비로소 그의 영혼에게 하느님의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조금씩 가난한 이와 병자들을 돕고 또 위로하였으며, 감옥을 찾기도 하였다.
이 모든 그의 변화는 성 프린치스꼬가 그 지방을 방문하여 설교한 뒤부터 일어난 일이다.
이제 그는 세속 안에서 수도생활을 꿈꾸게 되었다.
루케시오와 보나돈나는 매우 적극적인 성격이었으므로,
그들의 소망을 성인께 말씀드려, 천사적 성인으로부터 재속 3회의 수도복과 띠를 받았다. 이 순간부터 그들은 철저한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하였다.
그들이 먹을 빵도 없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부부는 높은 성덕을 얻었으며, 탈혼과 치유의 은사까지 받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여생을 참으로 행복하게 지냈는데, 부부가 거의 동시에 임종하는 은혜까지 입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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