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원에 작은 국화꽃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남쪽에 있는 교사의 그림자로 아직 햇빛을 받지 못하고 아침인지라 곤충들도 활동을 하지 않으니 그들의 모습이 매우 애처롭다. 아침이 아니라 해도 이미 많은 곤충들이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내한성이 강해서 웬만한 추위에는 꿈적할 국화가 아닌 것은 알지만 눈발이 날리는 날에는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서릿발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피는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칭송한 선조도 있지만 나는 꽃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얼어버릴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꽃의 역할은 무엇인가? 꽃가루받이를 하여 씨앗을 만들고 자손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 꽃의 역할일진대 긴긴 여름 다 보내고 찾아오는 곤충도 없고 날씨는 추워 얼어버리는 이때에 꽃을 피운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식물들은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다. 좀 더 나은 꽃가루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꽃을 다녀온 곤충이 필요하기에 꽃은 꿀의 양을 조절하여 곤충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꿀을 너무 많이 주면 퍼질러 앉아서 꿀만 먹고 다른 꽃가루를 가져올 확률이 적어지고 너무 적은 꿀을 주면 곤충들이 오지 않기에 최적의 양을 계산하여 꽃가루전달의 수고비를 지불 한다. 꽃은 고용주고 곤충은 피고용자인 셈이다.
또한 아주 이른 봄 양지바른 들이나 산기슭에서 꽃을 피우는 솜방망이는 가을에는 꽃잎을 열어 곤충을 기다리는 대신에 꽃잎을 열지 않고 속에서 스스로 수정하여 엄마와 형질이 똑같은 자식을 만들어 낸다. 고마리나 제비꽃 등은 보험도 든다. 보험으로 고마리는 땅속에서 폐쇄화로 씨앗을 만들고 두꺼운 낙엽층 밑의 제비꽃은 폐쇄화로 씨앗을 만들어 다음세대를 준비 한다. 모두들 자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을 채택하여 발전시키고 있는데 화분속의 국화꽃들은 왜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3000 여년 전부터 재배되어온 국화들은 꺽꽂이나 포기나누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굳이 씨앗을 만들어 자손을 퍼뜨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나보다. 늦가을의 국화는 자연이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자신의 본질을 잊어버린 대표적이 예라고 생각 된다. 자신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 현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니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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