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기고문

한밭춘추 기고문 - 마음대로 진딧물

김영중 미카엘라 2009. 12. 11. 22:00

마음대로 진딧물

김 영 중

가을산행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데 눈길을 멈추게 하는 나무가 눈에 띄어 돋보기로 자세히 관찰하니 작은 날개들이 촘촘히 붙어 있다. 진딧물처럼 보이는 곤충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 수피 밑으로 몸을 넣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진딧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봄이었다. 동네 뒷산에 올랐는데 마침 청미래덩굴 새순위로 진딧물 몇 마리가 소풍을 가고 있었다. 일단 카메라에 담고 집에 와 모니터를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소풍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미 한 마리가 연하디 연한 덩굴손에 새끼를 낳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 소름끼치게 싫었던 진딧물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다.

 

   몸길이 2~4mm의 다양한 빛깔로 치장한 그들은 엄청난 수의 개체가 한곳에 모여 줄기, 새싹, 잎의 즙액을 빨아먹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는데, 정작 외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방어할만한 변변한 무기도 없는 연약한 몸을 갖고 있다. 무기라고는 배마디에 있는 뿔관에서 분비되는 끈끈한 액체로 포식충의 입을 부자연스럽게 하거나 많은 밀랍가루를 분비하여 몸을 보호하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잘 번식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 봄 알에서 부화한 진딧물은 날개가 없는 암컷으로 수컷 없이 혼자서 알 대신 새끼를 낳는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309종 정도인데 종류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한 마리는 생애동안 50~10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부드러운 먹이가 풍부한 봄․여름에는 3주, 가을이면 4주 정도 살게 되어 1년이면 7~20세대가 지나간다.

 

   하나의 먹이식물에 식구가 너무 많아지면 날개를 달아서 다른 먹이식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수컷이 생기고 짝짓기를 한 다음 알을 낳아 겨울을 나게 한다. 겨울이 없는 지역에서는 계속 새끼만 낳는다. 놀랍게도 진딧물은 새끼를 낳거나 알로 낳는 것을, 또 수컷을 낳거나 날개를 만드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미물이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이렇듯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이는 생물뿐만 아니다. 지금의 물줄기도 스스로의 에너지를 가지고 수많은 시간의 축적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경제개념에 시간을 더하게 되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매우 비경제적이다. 진딧물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4대강 살리기를 당장 그만두겠다.

<대전충남숲해설가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