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의 거리 풍경
타나의 관광이 시작되었다. 타나에는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여 대형버스는 못 다니게 법으로 정해 놓았단다. 그래서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다녔는데 일행 12명에 기사와 현지 가이드까지 하면 꼭 한자리만 남는다. 편하고 안락함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3인용 의자에 체격이 크신 분과 함께 앉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좌석이 불편하다. 게다가 차들은 모두들 낡아서 매연이 너무 심하다. 나는 투어 첫날 오전부터 열악한 도로와 심한 매연으로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도로가 상점>
그래도 투어에 있어 멀미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차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시내 모습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른다.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진열대가 정겹고, 공동 빨래터의 사람들을 향해서도 셔터를 눌렀다. 빨래터의 여인들은 그 짧은 순간에도 포즈를 취해주고 웃어준다. 빨래터의 모습은 어디서 본 듯하다. TV에서 본 인도의 빨래터가 저런 모습이었나?
< 빨래터의 모습>
타나는 인구가 400만 명 정도 되는 큰 도시이다. 약 1,950만 명의 마다가스카르 인구의 1/4이 이 도시에 모여 있으니 명실공이 마다가스카르의 중심이 된다. 상수도 등 사회 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인구들이 먹고 마시고 빨래하는 것 들은 매우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학창시절에 인구의 증가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 시킨다고 배웠다. 그리고 정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인구 감소 정책을 실시했었다. 얼마 후 내가 결혼할 때 대학 은사님께서 주례사를 “...... 아이를 많이 낳아......” 하셨다. 그 말씀에 지금의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올케언니가 정부정책에 어긋나는 주례사를 하셨다고 흥분했었는데...... 지금 나는 학생들에게 재앙 중에 가장 무서운 재앙은 인구감소라 말하고 있다. 불과 30년 사이에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오전에 타나에서 25km떨어진 마지막 왕조의 궁전이었던 암보히망가를 다녀 온 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렀는데 ‘와~~ 멋있다!’ 꼭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분위기이다. 식당 천장에는 멋들어진 포도나무 줄기에 잎들이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식당이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호텔의 아침이 이제껏 여행하면서 만났던 그 어떤 것보다도 소박했기에 때문이었다. 아침에는 양평해장국으로 우리가 이름 붙여준 ‘바리아미나’라는 쌀죽(야채국에 고기고미를 넣어 만든 음식)만이 먹을 만한 정도였다.
<식당의 포도나무>
현지 가이드도 이런 고급스런 음식점에 다녀 본적이 없어서 매뉴에 대한 사전 설명을 못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식사는 아프리카대륙의 뷔페식당과는 다른 모습이다. 대체로 전체요리와 메인요리 그리고 후식으로 이어졌다. 전체요리는 제부 고기를 약간만 훈제한 것으로 활짝 핀 꽃처럼 담겨져 나왔다. 부드러워서 먹을 만 하였지만 여성분들은 모두 익혀 달래서 먹었다. 메인요리 역시 제부였다. 제부는 마다가스카르의 소로 등에 낙타처럼 혹이 있다.
식사하기 전에 나는 가이드에게 책방에서 책을 사고 싶다고 안내해 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고 다른 분들이 쉬시는 시간을 이용해 다녀오기로 하였다. 유럽의 한적한 어떤 골목처럼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 가는데 갑자기 나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풍경이 있다. 설치미술이다. 건물 벽에 설치된 카페모습과 닭을 싣고 가는 차량의 작품은 지금도 볼수록 재미있다.
<거리 작품>
서점은 작았다. 책도 많이 없다. 내가 읽을 수 없는 프랑스어나 말라가시어로 되어 있다. 글자를 읽을 수 없더라도 그림이 좋으면 학명이라도 알 수 있게 사오고 싶었지만 책 자체도 조악하여 구입할 수가 없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살 수 없으면 다른 곳에도 없단다.
순간 우리 집 서가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일본판 3권짜리 식물도감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일이니 1979년도에 구입 된 책이다. 나는 산에 가면 흔히 보이는 병꽃나무와 인동덩굴의 이름이 궁금하였다. 이제는 내가 돈을 버니까 식물도감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구입했는데 두 나무는 실려 있지 않았다. 실망을 한 나는 그 당시 은행에서 복권판매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일본 물건을 같이 팔고 있는 복권 소매상 아저씨에 부탁하여 큰돈을 주고 도감 한질을 구입했었다. 그 때 그 시절 우리 출판물들도 지금의 마다가스카르와 비슷했었다.
그런데 그 인동덩굴이 호텔 사망카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우리 동네 나무를 뜻밖의 곳에서 만나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인동덩굴 - 금은화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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