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의 기독교

김영중 미카엘라 2013. 11. 25. 11:02

< 마다가스카르의 기독교>

 

  우리를 실은 차는 언덕위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성당이 있었다. Cathedrale catholique d Andoharo이다. 성당 앞에는 작은 경당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모습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시성식이 있어서 교황님께서 다녀가셨다는 가이드의 안내이다. 어느 분일까? 성당은 유럽풍으로 지어졌으며, 내부의 창문은 12사도의 스탠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성당앞 경당의 내부 모습>

 

< 경당앞 제대석 위에 편안히 앉아 관광객을 구경하는 어린이 - 무슨 생각을 할까?>

 

<성당에서 내려다 본 타나의 모습>

 

  조금 더 내려가니 수녀님이 세우신 학교가 보인다. ‘성 요셉 안도하로라는 수녀님이다. 혹시 시성되신 분이 이 분이냐 물으니 그렇게 생각된단다. 그러나 내가 귀국하여 아무리 검색해도 이 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수녀님이 세우신 학교밑에서 바라본 타나> 

 

 마다가스카르 인구의 절반은 전통적인 조상숭배를 하고 있고, 41%가 그리스도교를, 7%가 해안가에 살고 있는 무슬림이다. 기독교가 마다가스카르에 들어온 때는 1500년 이슬람교 정착지를 습격한 최초의 유럽인 포르투갈의 항해가 디에고 디아스(Diego Diaz)가 들어온 이후로 생각된다. 이 후 17세기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와 프랑스와 교역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들어 왔을 것이다. 메리나 왕국의 라다마1세는 영국에서 제공한 총기로 힘을 얻어 16세기 후반에 서해안에서 시작된 사칼라바 왕국과 17세기 설립된 치탐발라 왕국을 포함하여 마다가스카르 섬의 거의 모든 왕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영국과의 특별한 관계는 1818년 런던선교회 회원들이 초청되어 교육과 선교에 힘쓰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는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828년 유럽과의 교역에 주력하였던 라마다1세가 사망하자 그의 부인 라나발로나1세가 즉위하게 되었고, 그녀와 유럽 사이에는 냉기류가 형성되었다. 전통숭배의 전통을 고집한 그녀는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Cathedrale catholique d Andoharo 성당에서 차를 타고 5분여를 올라가니 작은 성당이 보인다. 기념비도 보인다. 1837년에서 170년이 지난 2007년 세운 것이다. 1837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기가 바로 라나발로나1세가 기독교로 개종한 마다가스카르인들을 처형하였던 박해의 현장이었다. 1837Rasalama가 말라가시의 첫 번째로 순교를 하였고 그를 기념하여 1868지어진 성당이었다. 1868년은 라나바르나 2세가 기독교로 개종하기 바로 전 해이다. 라나발로나1세는 기독인들을 언덕 아래로 밀어뜨리고 집어던져 죽게 하였는데, 얼마나 많이 기독인들을 죽였는지 언덕이 죽은 이들의 뼈로 하앴다고 한다. 그래서 언덕의 이름이 암보히포시(Ambohipotsy) , 하얀언덕로 불린다하니 그 처참함이 상상이 된다. 성당 안에서는 미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자못 숙연해진다.

 

 

 

 

 

<하얀언덕 - 이 위에서 아래로 사람을 밀쳐내어 죽게 하였음. 이 선인장들은 그들의 죽음을 알고 있을까?>

하얀언덕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앞사람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그러면서도 배교를 하지 않은 그들의 믿음은 어떤 것인가?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103위 성인이 시성되기도 하였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시복 시성되지 못하고 있다. 자애로우신 주님! 우리 자랑스러운 믿음의 선조들에게 시복 시성의 영예를 허락하소서! 아울러 이 언덕에서 주님을 따라간 순교자들의 영혼들을 돌보아 주소서! 아멘!

 

 아니지! 그 분들은 이미 하느님 옆에 계시겠지.  '여기에서 예수님의 이름 돌아가신 영령들이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저희가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