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린 - 자연은 머무르지 않는다
타나(안타나나리보의 애칭)를 둘러보면서 길가에 가장 눈에 많이 띠는 나무가 있었으니 바로 꽃기린이다. 꽃기린도 여기가 고향인가? 우리는 꽃잎이 두 장으로 빨갛거나 노랗거나 미색인 가시가 많은 꽃나무를 꽃집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작은 꽃잎의 나무지만, 오래전 미얀마에서 상당히 큰 꽃잎의 꽃기린을 만났을 때 ‘꽃잎의 크기는 환경에 따라 많이 다르구나’ 생각했었다. 귀국하여 확인하니 역시나 원산지가 마다가스카르이다.
<암보히망가의 꽃기린>
그런데 꽃기린에 대해 놀란 것은 마다가스카르를 다녀온 후 얼마뒤의 일이다. 친정 거실에 누워 베란다의 꽃기린을 바라보고 있는데 꽃 위로 노루귀 마냥 돌돌 말린 예쁜 귀 두 개가 녹색 빛을 띠고 올라와 있는 것이다. 놀래서 ‘저것은 뭐지?’ 한숨에 다가가 보니 꽃하나의 속에서 꽃 두 개가 올라오는 것이다.
<꽃잎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꽃대 두개가 올라온다>
‘꽃잎 속에서 새로운 꽃이 나온다고? 그럼 꽃잎이 아니지!’ 루뻬를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작은 꽃잎 다섯 개가 보인다. 그러면 이제껏 꽃잎이라 부르던 저 두 장은 뭐지? 잎이라고 해야 되잖아! 꽃받침잎!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고향이 마다가스카스라 할 수 있지!’
<붉은 두개의 잎 사이에 5장의 노란 꽃잎이 보인다>
놀라운 마음을 가다듬고 꽃기린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니 꽃을 피우는 순서도 예사롭지 않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꽃차례이다. 꽃 하나에서 두 개의 꽃대가 올라오고, 두 개의 꽃대에서는 각각 또 두 개의 꽃대가 올라온다. 이렇게 꽃차례가 반복된다. 아니 엄격히 말한다면 꽃대라 말하는 것도 꽃대가 아니고 줄기라 해야 맞을 것이다. 두 장의 꽃잎은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이듯.
줄기를 들여다보니 잎 떨어진 자리 옆에는 양쪽으로 길이를 다양하게 한 가시그룹이 있고 그 위에 바로 붙어서 꽃대 떨어진 자국이 있다. 잎 하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하는 모습이다. 자식번식을 위해 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잎은 나무가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만들어야 한다.
<잎 떨어진 자리 옆의 가시는 크기가 다양하다. 다양한 동물로 부터 잎을 지키려는 노력의 산물이며, 그 위에 동그란 것은 꽃줄기가 떨어진 자리이다>
빨강색 두 장이 꽃잎이 아니라면 잎이어야하고 꽃대가 아니라면 줄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현장을 찾기에 골몰하였다. 시간이 많이 들어야 할 것이기에 꽃대에 표시를 하고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내가 매주 모여서 공부하고 식사하는 식당 현관에 있는 꽃기린이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빨강색 꽃잎이 녹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꽃잎은 수분을 하면 대부분 즉시 떨어지게 되어있다. 물론 뜰보리수나무 처럼 열매가 익을 때까지 꽃을 붙이고 있는 것도 있지만 꽃잎 유지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꽃잎을 떨군다.
<빨강색의 꽃받침잎이 녹색으로 변하면서 크기도 커지고 있다>
그래서 대극과 식물들은 버려야 할 꽃잎을 만드는데 드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실제 꽃잎은 작게 만들고 잎사귀에 빨강색이나 노란색을 넣어 곤충을 유인하는 것이다. ‘그늘이어서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어 급하게 녹색으로 변했나?’ 암튼 고맙다. 잎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서!
그러면 줄기라는 것도 보여 주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친정에 있는 꽃기린의 가지를 열심히 관찰하다보니 줄기로 변한 것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줄기가 시작될 때는 아주 가늘고 가시가 많았다. ‘결국 꽃대로 모두 떨어지고 마는구나!’ 낙심하고 있었는데 역시 식당의 꽃기린에서 줄기로 변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꽃줄기가 가지로 굵어지는 과정. 잎이 바로 밑에 달려있어 꽃줄기였음을 보여주고
매끄러운 것이 직접 줄기가 된 가지와 구별된다>
<처음부터 가지가 되는 경우는 잔가시가 많이 있다>
꽃기린은 자연이 한없이 경이롭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그리고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도. 자연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지혜를 가지고 자신을 발전시킨다. 꽃기린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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