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 성인

3.20일 파르마의 복자 요한

김영중 미카엘라 2016. 3. 20. 10:15

320일 파르마의 복자 요한. 1회

Beato Giovanni (Buralli) da Parma, I Order
Blessed John of Parma
Also known as Giovanni di Parma, John Buralli 
1209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289년 그렉치오 은둔소에서 소천하였다.
Beatified : 1777 by Pope Pius VI (cultus confirmed)


작은 형제회의 제7대 총장인 요한 부랄리(Joannes Buralli)는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으로 25세 때에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었다. 그는 즉시 파리(Paris)로 가서 공부를 하고 사제로 서품된 후에는 볼로냐(Bologna), 나폴리(Napoli) 그리고 로마(Roma)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그의 설교는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곤 하였다. 1247년 그는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강인하고 배짱이 센 사람으로 인내심도 많았기 때문에 수도회 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을 잘 풀어나갔다.
 

   그는 자주 부엌일하는 수사들을 거들어 준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침묵을 사랑하고 화해의 정이 깊어서 쓸데없는 말은 삼갔다. 그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국왕 헨리 3세가 문밖으로 나와 보잘것없는 그를 껴안아 영접했고, 프랑스의 상스(Sens)를 찾았을 때에도 국왕 루이 9세가 그의 기도와 축복을 청할 정도로 공경을 받았다. 또한 그는 교황으로부터 임명 받은 동방 황제의 교황 대사로서 봉사하기도 했다.

  1257년에 그는 총장직을 사임하고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 7월 15일)를 후임자로 뽑았다. 그는 그레치오(Greccio)의 은둔소로 은퇴하여 30여 년 동안 잊혀진 사람으로 살며 수덕생활에 전념하였다.
(가톨릭홈에서)

파르마의 요한(1247-1257년) 7대 총장


과거로의 복귀:
리옹총회에서 선출되었으며, 이 새 총장의 선출 소식을 듣고 에지디오 형제는 "오기는 잘 오셨는데 너무 늦게 오셨군요!" 하고 외쳤다. 그는 당시 형제회를 정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학문과 지식에서도 특출했지만 프란치스코의 이상에도 아주 헌신적이었다. "형제회란 건물은 학문과 덕행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진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전자가 더 우세해지고 있는 현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통치 규범은 자신의 모범이었다.

그는 초기의 열정과 옛 전통으로 돌아감을 목표로 제시했다. 관구들간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킴으로서 형제회의 정신을 보다 잘 통합하고자 총회를 이탈리아와 알프스 산 너머에서 번갈아가며 열리도록 조정했다.

그는 모든 관구들을 걸어서 방문했고, 가는 곳마다 회칙과 유언에 충실하라고 권고했다.